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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밤, 비/The Great Book

편람(Enchiridion)

by 블라이스 2018. 6. 3.

편람(Enchiridion)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되지 못하는 사람은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
-에픽테토스-


 다가올 새 학기를 앞둔 2월, 학교에서는 학년과 담당업무를 정해야 하기에 마음이 뒤숭숭해진다. 나의 일 년을 결정하는 순간이라서 어쩌면 혹자는 학교에서 지내는 일 년 중에 이 맘 때가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모든 교사들이 원하는 대로 업무와 학년은 배정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선호하는 업무와 학년이 대체로 비슷하고 마음에 드는 것들의 개수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근의 비슷한 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A와 B. 두 사람은 각자의 학교에서 내야할 지원서에 같은 학년과 같은 업무를 쓰게 되었다. 아마도 두 사람의 경력과 근무환경, 생각이 비슷한 것 같다. 며칠이 지나고 발표가 나자 한 사람은 행복해하고 다른 한 사람은 불행해한다. 살펴보니 두 명은 같은 업무와 같은 학년을 배정받았다. 어째서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을까? 물론 다른 외적 요인으로 인하여 차이가 발생할 수도 있지만, 결국에는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행복과 불행의 길에 들어서는 것이 아닐까? 과연 나라면 이 상황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먼 옛날, 노예였고, 가난했으며, 절름발이였던 한 사람이 위와 같은 상황에 대하여 명쾌하게 설명해준다. 행복에 이르는 방법을 거리에서, 집에서, 학교에서 줄곧 말하고 가르치고 다녔던 철학자. 그 이름은 에픽테토스이다. 에픽테토스에 따르면 이 세상에는 우리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일과 우리 의지대로 할 수 없는 일이 있다고 한다. 사물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말하거나 무언가 하고자 하는 의욕을 느끼거나 어떤 것을 원하거나 기피하는 행동은 우리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같이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들은 본디 자유로운 것이어서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행할 수 있다. 반면에 건강, 재산, 평판, 권력이나 죽음과 같은 것들은 우리 뜻대로 할 수 없는 일들이라고 한다. 내가 죽기 싫다고 외친다고 불사의 몸이 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왕이 되어 세상을 지배하고 싶다고 생각한다고 해서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것들은 결국 타인이나 자연에 영향을 받는 것들이다.


 에픽테토스에 따르면 우리는 어떤 일이든 시작하기에 앞서 겉모습에 휘둘리지 말고 그것의 본성에 대하여 생각해 볼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 일이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닌지를 생각해야 한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이성의 잣대로 꼼꼼히 따져서 판단한 후에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것에 관심을 두고,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것이라면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대하여 원망하지 않아야 한다. 왜냐하면 나쁜 일을 당했을 때 우리가 괴로워하는 것은 그 일 자체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그 일에 대하여 우리가 가지고 있는 관념 때문이다.  A와 B 두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내 의견을 적어서 내는 행동은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행동이기에 아무런 방해 없이 자유롭게 적어 냈다. 다만 업무와 학년이 결정되는 것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이 상황에서 한 사람은 벌어진 일에 대해서 자신을 돌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결정한 후에 담담하게 실천으로 옮기는 선택을 해서 마음의 평정을 찾을 것이다. 다른 한 사람은 결정된 사항에 대하여 끊임없이 불만을 표출하면서 외부 탓으로 화를 돌리고 결국에는 불행에 한 걸음 가까워진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나는 A가 될 수도 있고, B가 될 수도 있다. 결국에는 내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다.

물론 아직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구절도 많이 있다. 특히 죽음에 관한 부분들은 의구심이 많이 든다.


죽음 그 자체는 두려운 일이 아니다. 
죽음은 두려운 것이라는 생각, 바로 그것 때문에 죽음이 무서운 것이다.


자식이 죽었다. 그 아이는 원래 자리로 돌아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다. 그이 또한 왔던 곳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친구의 가족 중 하나가 죽었다고 가정하지요.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이니 어쩔 수 없지 않으냐고 그대는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대 가족 중 누군가가 죽었다면 그대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고 슬픔에 빠질 것입니다.

이럴 때에는 남에게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났을 때 그대의 감정이 어떠했는지를 생각할 일입니다.



 어느 누구도 죽음은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는 일인데 인간으로서 두려움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죽음은 두렵지 않을 것이라고 되뇌고 마음속으로 여러 가지 생각을 해봐도 쉽게 가시지가 않는다. 아니 점차 온갖 생각에 빠져 두려워진다. 죽음 그 자체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하기는 어렵다. 차라리 '나는 죽음이 두렵다. 죽음에 대하여 나약하다' 라는 생각을 받아들이고 죽음을 잘 맞아들일 수 있도록 준비를 하는 게 어쩌면 더 나은 생각일지도 모른다.


인생이라는 연극에서 주어진 배역에 충실하라.

작가의 의도대로 연극 속에 등장할 배우일 뿐이니 가난뱅이 역을 맡으라고 하면 기꺼이 맡아라

단만극을 쓰면 짧은 생을 사는 것이고 장막극을 쓰면 조금 오래 사는 것이다.

내가 할 일은 주어진 배역을 온 힘을 다해 연기하는 것이다. 배역을 선택하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 부분 또한 아직은 내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물론 내 역할을 깨닫고 주어진 삶 속에서 열심히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 모든 인간은 동등하게 존중받아야 할 권리가 있지 않은가? 가혹하게 운명이 미리 정해져 있다면 오히려 살아갈 의욕을 상실할 수도 있지 않을까? 더 심오하고도 깊은 뜻이 있겠지만 아직 나는 우매하여 이 문장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나 보다. 



마지막으로 아래의 문장을 다시금 되새기며 이 글을 마무리해야겠다.
 <삶의 목적은 행복이며 행복은 마음의 평정에서 온다>
행복은 결코 외부에 있지 않고 내가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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