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디푸스 왕
(삼성판 세계문학전집)
지금 나의 삶은 운명이 정해준 수순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나의 선택들이 차곡차곡 모여서 이루어 졌는지 섣불리 결론을 내릴 수가 없다. 과연 우리는 운명의 굴레에 갇혀 주어진 삶을 살아야 할까? 나만이 이 문제에 대하여 호기심을 가지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예전부터 수많은 사람들은 운명에 대하여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자신의 운명을 알아보기 위해 타로점이나 사주를 보는 사람도 있고 내 운명을 이끌어주는 자신 만의 물건을 가지고 있는 이도 있을지도 모른다. 관상과 손금도 수없이 많이 들어본 것들 중의 하나이다. 운명이 문을 두드리는 모습이 인상 깊은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 운명을 다루고 있는 수많은 문학작품들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이처럼 우리 곁에는 운명이 늘 도사리고 있다.
사실 운명에 대하여 고민을 하게 된 이유는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을 읽었기 때문이다. 운명이 이처럼 가혹할 수 있는지, 내게도 운명이 있다면 내 삶의 끝은 어떻게 그려져 있는지, 나는 어떻게 운명을 받아들이고 살아갈 지에 대한 고민을 내게 던져 주었다. 오이디푸스의 운명은 참으로 가혹했다. 오이디푸스 왕이 다스리는 테베에 열병이 창궐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집들이 폐허가 되어갔다. 예전에 스핑크스를 물리쳐 테베를 한번 구해준 오이디푸스이기에 모든 시민들은 다시 한 번 도움을 요청한다. 신탁을 통해 알게 된 저주를 푸는 방법은 이전 통치자였던 라이오스 왕을 죽인 살인자를 몰아내는 것이다. 오이디푸스는 살인범을 꼭 찾아 응징하겠다고 시민들에게 선언한다. 그러나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결국 오이디푸스가 살인자임이 밝혀지게 된다. 오이디푸스는 그의 손으로 아버지를 죽게 했고 자기 어머니에게 제 자식을 낳게 하는 끔찍한 예언을 실현시킨 장본인인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그는 슬픔과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자신의 눈을 찔러 세상과 자신을 차단한다.
분명 오이디푸스도 불길한 기운을 감지하였다. 사건의 전모가 차츰차츰 밝혀질 때마다 범인이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품었다. 운명이라는 거대한 흐름에 피하는 것도 맞서는 것도 본인의 선택이기에 어쩌면 오이디푸스는 모든 것이 밝혀지기 전에 적당한 선에서 이 사건을 덮고 지금의 부와 명예를 누리며 테베를 다스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았고 진실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갔고 자신의 운명을 피하지 않고 맞섰다. 그 결과, 끔찍한 예언을 알게 되고 자신의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는 담담하게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였다.
어쩌면 운명이란 큰 흐름일지도 모른다. 큰 강의 흐름을 거스르기 힘들듯이 운명이란 흐름 속에서도 다른 흐름으로 바꾸어 나아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다만 큰 흐름 속에서도 나의 종착점은 무수히 많을 것이다. 흐름을 따라가면서 수많은 선택을 하게 되고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서 종착점이 정해지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종착점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내가 원하는 종착점에 도달하기 위하여 삶의 방향을 정하고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끊임없이 노력한다면 생의 마지막 순간에는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 그 운명이 어떤 운명이든지간에 말이다.
'겨울, 밤, 비 > The Great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티고네 (0) | 2018.06.28 |
---|---|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0) | 2018.06.25 |
공산당 선언 (0) | 2018.06.15 |
편람(Enchiridion) (0) | 2018.06.03 |
향연 (0) | 2018.05.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