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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연
'향연'은 시인 아가톤의 집에서 열린 축하연에 모인 사람들이 에로스에 대한 찬사를 하는 이야기이다. 찬사를 하게 된 경위는 파이드로스가 많은 신들은 물론 헤라클레스와 같은 영웅, 심지어 소금과 같은 물질도 찬사를 받는데 에로스에 대한 찬사가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불만을 토로하였기 때문이다.
첫째, 파이드로스(명예, 용기의 덕을 고취하는 에로스)
사랑의 신 에로스는 신들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존귀할 뿐만 아니라 살아 있을 때나 죽은 다음에나 인간이 덕과 행복을 얻도록 돕기 때문에 찬양해야 한다고 말한다. 파이드로스가 말한 덕과 행복의 의미는 명예(전쟁에서 물러서지 않는 용기, 사랑하는 이를 위한 희생정신)를 말한다.
둘째, 파우사니아스(육체의 쾌락을 쫓는 에로스가 아닌 혼의 덕을 함양하는 에로스)
에로스는 단순하지 않기에 '하늘의 에로스'와 '세속의 에로스'로 구분한 뒤에 어떤 에로스를 찬양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밝힌다. 모든 행위는 그 자체로 선하거나 악하지 않다. 행위의 좋고 나쁨은 행위가 이루어지는 방식에 따라 성격이 결정되는 것이다. 두 종류의 에로스는 추구하는 목적에서 구별되며 사랑을 구하고 나누는 행위 자체에는 별 차이가 없다. '세속의 에로스'는 단순히 성욕을 채우는 데만 몰두하는 것이며 '하늘의 에로스'는 육체적이긴 하지만 덕과 훌륭한 성품을 지향하는 데서 차이가 있다.
※참고: 특히, <향연>에서는 남성 간의 동성애가 두드러지는데 고대 헬라스 문화의 특징적인 측면이다. 주로 높은 계층에 속한 자유인 신분의 남성들과 관련되어 있고 나이든 쪽이 주도권을 쥐고 성적 쾌락을 얻고 젊은이는 나이 든 쪽의 친분과 후원을 얻는다. ‘사랑하는 자’와 ‘사랑받는 자’ 간의 분명한 구별, 그리고 ‘능동적인 성 역할과 수동적인 성 역할’ 간의 구별이 있다. 파우사니아스는 동성애 관계를 상호관계로 표현한다. 소년은 성인 남자에게 성적인 만족을 주는 대신 윤리적 교육을 얻는다. 교육적인 동성애 관계가 충분한 의미를 지니기 위해서는 소년과 어른이 모두 교육적인 노력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셋째, 에리크시마코스: 모든 존재자들의 형성 원리로서의 우주적 에로스
에리크시마코스는 에로스를 세계 전체로 확장한다. 에로스는 의술, 체육술, 농사 기술, 음악(시가), 천문학 그리고 예언술 등 다양한 기술들의 토대가 되는 우주적 원리이다. 각각의 기술들은 해당 분야에서 ‘에로스가 하는 일들’을 상대로 좋은 에로스와 나쁜 에로스를 분별해서 거기에 맞게 좋은 에로스는 충족시키고 조장하며, 나쁜 에로스는 규제하거나 좋은 에로스로 대체하는 식의 처방을 할 줄 아는 지식이다. 의술은 비움과 채움에 관련된 육체의 ‘에로스적인 일들’에 대해서, 음악(시가)은 화음과 리듬에 관련된 에로스적인 일들에 대해서, 천문학은 별들의 운동과 계절들에 관련된 에로스적인 일들에 대해서, 그리고 예언술은 인간과 신들이 협조하면서 조화를 이루고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에로스가 하는 일들'에 관한 것이다. 에로스는 인간을 포함해서 존재하는 모든 것들 속에 들어있는 것이므로 사람의 행위와 관련해서는 행동의 원인이 되는 욕망과 같은 것이기도 하고, 음악의 화음, 계절의 변화 등과 관련해서는 그런 현상들을 추진하는 어떤 힘과 같은 것이기도 하다.
넷째, 아리스토파네스: 인간의 상실한 본성을 치유하는 자로서의 에로스
처음의 인간은 남성과 여성 그리고 남녀동체(양성을 함께 갖춤), 이렇게 세 부류가 있었다. 사람들의 원래 모습은 전체적으로 둥근 구형이었다. 원형을 이루도록 등이 붙어있고 네 개의 손과 발, 두 개의 생식기를 가지고 있었고 원통형 목에 완전히 닮은 두개의 얼굴이 반대로 놓여 있었다. 이들의 원형을 이루며 빠르게 굴러갈 수 있었고 대단한 힘과 능력 그리고 방자함을 지녔기에 신들에게 대들었다. 그러나 신들은 인간들의 예배와 제물을 받았기 때문에 멸망시킬 수는 없었다. 제우스는 생각을 짜내어 인간들을 살아 있게 하면서도 나쁜 짓을 그만두게 할 방법을 마련했는데, 그것은 인간을 반으로 갈라서 힘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숫자를 증대시켜 신들에게 더 쓸모 있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제우스는 인간을 반으로 잘라 아폴론에게 주어 얼굴과 반쪽 목을 잘린 쪽으로 돌려놓게 하고 몸의 잘린 곳을 치료해 주도록 했다.
반으로 잘린 인간은 제각기 자신의 다른 반쪽을 그리워하며 만나서 한 몸이 되기를 욕망하다가 삶의 의욕을 잃고 굶어 죽거나 나태해져서 죽어갔다. 반쪽 중 하나는 죽고 하나는 살아남게 되었을 때, 상대가 순전한 여성의 반쪽이든 남성의 반쪽이든 상관하지 않고 결합하려 들었는데, 이 때문에 이 종은 사라질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인간은 멸망해 갔다. 제우스는 이를 가엾게 여겨 다른 방법을 생각했다. 제우스는 수치스러운 부분을 앞으로 옮겨 놓음으로써 생식 기관을 이용해서 남성이 여성의 생식기 속에 삽입해서 자식을 낳게 하였다. (전에는 메뚜기처럼 땅 위에 사정을 하여 아이를 낳았다.) 이처럼 생식 방법을 바꾸어 놓은 목적은 남성과 여성이 만날 경우에는 아이를 낳아서 종을 재생산하도록 하고, 남성과 남성이 만났을 때는 결합하는 것 자체를 중단하고, 일상의 삶을 돌보게 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어떤 형태의 사랑이든 간에 자신의 잃어버린 반쪽을 만났을 때는 사랑의 결속이 가장 강해서 서로 떨어지려 하지 않고 평생을 같이 살아간다. 이것은 단순한 성적인 결합의 욕구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잃어버린 자신의 본성을 되찾아 온전해지려는 갈망에서 나오는 것이다. 사랑이란 이러한 전체를 바라고 하나가 되고자 하는 욕망과 노력을 일컫는 말이다. 옛날에 하나였는데 나쁜 행동으로 인하여 신에 의해서 분할된 것이므로 그런 일을 다시 겪지 않으려면 신들에게 조신하게 굴어야 한다. 우리는 에로스를 거역해서 신들로부터 미움을 받지 말고 에로스를 안내자 내지는 지도자로 삼아 좋은 일을 만날 수 있도록 모든 사람들에게 경건한 행동을 권고해야 한다. 인류가 행복해지는 길은 에로스의 명령을 충실히 수행하고 각자가 원래부터 자기에게 속한 짝을 찾아내어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가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다섯째, 아가톤: 인간에게 있는 모든 좋은 것들의 원인으로서의 에로스
신들은 모두 행복한 존재들이지만 그 중에서도 에로스가 가장 행복한 신이다. 왜냐하면 에로스가 가장 아름답고 훌륭하기 때문이다. 에로스가 가장 아름다운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신들 중에서 가장 젊다는 데 있다. 가장 큰 증거는 에로스는 노년을 피한다는 점이다. 그는 본래 노년을 싫어하여 가까이 가지 않는다. 젊은이들과 언제나 함께 있고 그 자신이 젊다.
둘째, 에로스는 섬세하다. 호메로스는 단단하지 않고 물렁한 것 위를 걸어 다닌다는 것을 증거로 삼아 사랑의 여신의 섬세함을 표현했다. 에로스의 섬세함에 대해서도 같은 증거에 입각해서 보여줄 수 있다. 그는 존재하는 것들 중에서 가장 부드러운 것 안에서 걸어 다니고 그 속에 산다.
셋째, 에로스는 유동체의 형태를 하고 있다. 만약 그렇지 않고 굳어 있다면, 혼 전체를 완전히 감싸며 몰래 혼속으로 들어오고 빠져나오지 못한다.
넷째, 에로스는 균형미를 지녔다. 그 가장 큰 징표는 우아함이다.
마지막으로 에로스는 형색이 아름답다. 그가 꽃피는 절정기의 삶을 보내고 있음을 가리킨다. 꽃피지 않거나 시들은 육체나 혼 또는 다른 어떤 것에도 깃들지 않는다.
에로스가 훌륭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에로스는 가장 정의롭다. 그는 신이나 인간에게 불의를 저지르지도 않고 당하지도 않는다.
둘째, 가장 절제 있다. 그는 쾌락의 주인이기 때문에. 어떤 쾌락도 에로스보다 더 크지 않다.
셋째, 가장 용감하다. 신들 가운데 가장 용감한 아레스를 휘어잡았다.
넷째, 가장 현명하다. 에로스는 모든 종류의 예술적 창조에서 뛰어나다. 아폴론의 궁술과 의술, 예언술은 에로스에 힘입은 바가 크다. 뮤즈들은 문학이나 음악에서, 헤파이스토스는 야금술에서, 아테네는 직조술에서, 제우스는 신과 인간을 지배하는 기술에서 모두 에로스의 제자인 셈이다.
따라서 에로스는 모든 좋은 것들의 원인이다. 그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평화와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장본인이다. 그는 우주적 찬탄의 대상이며, 모든 기쁨의 장본인이며, 신과 인간들의 가장 좋은 안내자이자 지도자이다. 축제, 종교 의식의 주제자이고, 부드러운 성격을 형성하고, 선물을 베푸는 데 관대하고, 선행을 베푸는 데 우호적이며, 현자들의 명상의 대상이고, 신들의 찬양의 대상이다. 가장 훌륭한 지원자이자 원조자이고 질서의 원리이며 가장 완벽하고 훌륭한 지휘자이다.
마지막. 소크라테스: 궁극적인 목표인 아름다움 자체에 이르게 되는 방법을 설명
우선 소크라테스는 아가톤의 주장 <에로스는 모든 좋은 것들의 원인이다>을 논박한다. 우선 에로스는 대상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어떤 것'의 '에로스')고 밝힌다. 여기서 소크라테스는 관계 개념인 ‘어떤 것의 에로스’에서 ‘어떤 것’과 ‘에로스’의 관계가 어떤 관계인가를 분명히 한다. ‘어떤 것의 에로스’라고 할 때 그 ‘어떤 것’은 에로스가 욕망하는 대상으로서의 어떤 것이다. 그런데 아무도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욕망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에로스가 ‘어떤 것’을 욕망한다고 할 때, 에로스는 그 ‘어떤 것’을 아직 갖지 않은 상태일 수밖에 없다. 욕망하는 자는 그가 아직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욕망하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것의 에로스’는 ‘아직 가지고 있지 않은 것(결여하고 있는 것)에 대한 사랑’인 것이다. 만약 에로스가 (아가톤이 연설에서 말하는 것처럼) 아름다운 것에 대한 에로스라면, 에로스는 아름다운 것을 가지고 있지 않아야 한다. 아름다운 것을 결여하고 있는 것은 아름답다고 말할 수 없다. 그렇다면 에로스를 아름답다고 할 수 없다. 좋은 것들은 아름다운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아름다운 것을 결여하고 있는 에로스는 좋은 것을 결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아가톤의 주장은 논박된다.
다음으로 소크라테스는 에로스에 관한 설명을 위해 디오티마라는 여자 예언자를 소개한다. 그리고 그녀와 대화를 전하는 방식으로 에로스를 설명한다.
-소크라테스: 에로스는 위대한 신이고 아름답다.
-디오티마: 소크라테스가 아가톤을 논박한 것과 동일한 논증으로 소크라테스의 생각을 반박한다.
-소크라테스: 그럼 에로스는 추하고 악한 것인가?
-디오티마: 아름답지 않은 것은 반드시 추한가? 지혜에 속하지 않는 것은 모두 무지에 속하는가? 지혜와 무지 사이에는 중간적
인 존재가 있다. 마찬가지로 에로스는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의 중간에 있다.
-소크라테스: 그럼 에로스란 무엇인가?
-디오티마: 에로스는 가사적인 존재와 불사적인 존재의 중간자, 위대한 신령(신과 사람의 중간자)이다. 신령인 에로스는 애지자이다. 신은 이미 지혜로운 자라서 지혜를 사랑하지 않지만 에로스는 신이 아니기에 지혜롭지가 않다. 또한 에로스는 무지한 자가 아니기 때문에 지혜를 사랑한다. 이처럼 애지자로서의 에로스는 사랑받는 대상이 아니라 사랑하는 주체이다.
-소크라테스: 에로스가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주체로서 아름다운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이라면 에로스가 인간들 사이에서 하는 일은 무엇인가? 다시 말해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사람이 느끼는 사랑의 목적은 무엇인가?
-디오티마: '아름다움' 대신에 '선(좋은 것)'으로 바꾸어 생각해 보자. 우리가 좋은 것을 갖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소크라테스: 좋은 것을 소유한 자는 행복하게 된다. 좋은 것을 얻는 목적은 바로 행복해지기 위해서이다.
-디오티마: 따라서 에로스의 목적은 행복이다. 일상에서 사람들은 '성적인 관계'에 대해서만 에로스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에로스는 좋은 것(선)들과 행복에 대한 모든 욕망을 통칭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인간은 단순히 ‘좋은 것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소유하고자 하며, 나아가서 단순히 소유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것을 영원히 소유하기를 원한다. 요컨대 사랑이란 좋은 것을 자기 자신 속에 언제나 갖고자 하는 욕망이다.
이제 사랑의 본질에 대하여 알았는데 사랑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과 어떤 종류의 행위를 해야 하는가?
-소크라테스: 내가 말할 수 있다면 나는 당신에게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디오티마: ‘좋은 것을 늘 소유’하기 위해 에로스가 하는 일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아름다운 것 안에서의 생산(출산)’이다.
-소크라테스: 당신의 말을 이해하려면 해설자가 필요하다.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디오티마: 모든 사람들이 성숙하면 아이를 낳고 싶다는 충동을 자연히 느낀다. 그러나 아름다움 속에서만 이 욕망은 이루어지고 추한 것 속에는 이 욕망은 결코 달성되지 않는다. 생식이란 전적으로 성스러운 것이다. 이 출산은 아름다운 것 속에서만 일어난다. 임신과 출산은 신적인 것이며 가사자인 생물 안에 있는 불사적인 것이다. 아름다운 것만이 조화를 이룰 수 있고 조화를 이룰 수 있을 때만이 출산이 가능하다. 그래서 아름다운 것은 생산을 관장하는 여신과도 같으며 불사의 필수적인 조건이다.
-소크라테스: 그렇다면 에로스가 출산을 추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디오티마: 출산은 가사자들이 불사에 가장 가까이 접근하는 방법이다. 모든 동물들은 생식기에 사랑의 열병을 앓는다. 먼저 상대방과 결합하려하고, 그 다음에는 낳은 새끼를 양육하고자 하는데, 새끼를 위해서는 가장 약한 자도 가장 강한 자와 싸우며 자신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불사를 얻고자 하는 욕망 때문이다. 인간들의 명예 사랑에서 불사의 동기는 더욱 잘 드러난다. 사람들은 이름을 떨치고 불멸의 명성을 쌓기 위해서 온갖 위험을 감수하고, 돈을 쓰고 노고도 아끼지 않으며 목숨까지 내놓을 준비가 되어 있다. 인간의 경우에는 이러한 행동이 이성적인 숙고의 결과라고 할지 모르지만, 짐승의 경우에는 이런 원인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
-소크라테스: 잘 모르겠다. 사랑과 관련된 그 밖의 모든 현상의 원인을 말해주시오
-디오티마: 가사자가 불사를 추구하는 유일한 방법은 출산에 의한 방법이다. 이 출산(재생산)에 의한 방법은 원래 것이 늙어
서 없어지고 대신 같은 종류의 새 것을 남겨 놓는 방식이다. 어떤 생명체가 살아 있다는 말을 들으며 자기동일성을 유지하고 있는 동안에도 그는 언제나 없어지고 새로 생기는 과정(살, 머리카락, 피 등)에 놓여 있다. 그의 영혼도 마찬가지이다. 성격, 습관, 의견, 욕망, 쾌락, 고통 등은 언제나 똑같은 것으로 남아 있지 않다. 인식의 경우가 더욱 그렇다. 우리의 인식은 항상 변한다. 일부는 새로이 생겨나고 일부는 사라진다. 인식이 사라진 자리에 새로운 인상을 심어줌으로써 마치 중단 없이 동일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소크라테스: 당신은 무척 현명하다. 그 말을 믿어도 되는가?
-디마티마: 육체적인 임신을 한 자들은 육체적 사랑을 지향하며, 그래서 자식의 출산에 의한 방식으로 불사를 추구한다. 반면에 정신적인 임신을 한 자들은 분별이나 덕을 자식으로 뒤에 남긴다. 이를테면 호메로스나 헤시오도스 그리고 다른 시인들이 그랬듯이 불후의 명작을 남기거나, 또는 뤼쿠르고스나 솔론 같은 입법가 내지 정치가들처럼 나라의 경영에 관한 절제와 덕을 낳거나, 또는 아름다운 젊은이를 찾아 교육을 함으로써 정신적 출산을 하여 함께 기른다.
-디오티마: 지금까지 몇 가지 신비를 다루었고 앞서 말한 에로스적인 일들에 입문하여 올바른 과정을 거쳐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면 가장 높은 단계에 이를 수 있는데 지금부터 ‘최고 비의’에 관해서 알려주겠다.
<최고 비의>
이 목표에 이르는 올바른 길을 찾으려는 사람은 젊었을 때에 육체적 아름다움에 대한 명상에 열중하는 일부터 시작한다.
우선 한 특정한 아름다운 사람과 사랑에 빠져야 하고 그 사람과 협력하여 고상한 감정을 가져야 한다. 후에 그는 한 사람의 육체적 아름다움은 다른 사람의 아름다움과 흡사함을 알게 되고 모든 육체에 나타나는 아름다움은 동일함을 알게 된다. 이러한 결론에 도달하게 되면 한 특정한 사람에 대한 강렬한 정열에서 해방될 것이다. 이러한 정열은 보다 낮은 것이고 사소한 것임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다음 단계는 육체의 아름다움보다도 영혼의 아름다움을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결과로 육신은 별로 아름답지 않지만 영혼이 훌륭하다면 그는 이 사람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게 되고 젊은이들을 더욱 훌륭하게 만들어 줄 담론들을 추구하게 된다.
다음 단계는 관행들과 법률에 있는 아름다움으로 나아가게 된다. 학문의 아름다움을 보게 된 결과 그는 보다 넓은 의미의 아름다움에 눈을 뜨게 되어 특정 인간, 하나의 제도와 같은 작은 아름다움에 흡족해 하지 않고 새로이 주목하게 된 아름다움의 광대한 바다를 응시함으로써 지혜에 대한 풍요한 사랑 속에서 아름답고 훌륭한 감정과 사상을 갖게 될 것이다. 마침내 이러한 경험에 의해 그의 마음의 능력이 강화되고 증대되어서 하나의 독특한 학문을 알게 된다. 이 학문은 이데아 자체인 아름다움이며 육체와 혼에 속하는 모든 아름다운 것들의 아름다움의 원천이다.
이것이 지금까지 기울여온 온갖 노력의 마지막 목표이다. 이 아름다움은 절대적이고 그 자체로서만 존재하고 독특하며 영원하고 모든 다른 아름다운 것은 이 아름다움을 분유하고 있지만 이 아름다운 것들이 생멸하더라도 이 아름다움에는 결코 증감이 없고 어떠한 변화도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육체적 아름다움의 한 예로부터 두 가지 예로, 그리고 두 가지 예로부터 모든 예로, 그 다음에는 육체적 아름다움으로부터 도덕적 아름다움으로, 그리고 도덕적 아름다움으로부터 지혜의 아름다움으로, 마침내는 여러 가지 지혜로부터 절대적 아름다움을 유일한 대상으로 하는 최고의 지혜에 도달하고 결국은 절대적 아름다움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 이것이 사랑의 신비에 접근하는 또는 사랑의 신비에 참여하는 올바른 길이다.
-소크라테스: 이것이 디오티마가 말해 준 것이고 또한 내가 믿는 것일세. 에로스를 찬양하는 것은 모든 사람의 의무라고 나는 선언하며, 나 자신도 각별히 에로스의 신비를 찬양하고, 그 신비를 실천하고 있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하기를 권하며, 지금이든 다른 때든 언제나 내 능력을 다해서 에로스의 힘과 용기를 찬양하네. 이것이 나의 연설일세.
*출처: 『철학사상』 별책 제5권 제4호,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2005, 김인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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