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오파지티카
역자, 주석 및 연구 : 박상익
출판사 : 소나무
인류의 역사에서 법적으로 언론의 자유를 획득하게 된 시기는 그리 길지 않다. 18세기 말미가 되어서야
1789년 프랑스 혁명으로 만들어진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 중 제 11조
사상과 의견의 자유로운 소통은 인간의 가장 귀중한 권리의 하나이다. 따라서 모든 시민은 자유로이 발언하고 기술하고 인쇄할 수 있다. 다만, 법에 의해 규정된 경우에 있어서의 그 자유의 남용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한다.
1791년 채택한 미국의 권리장전 중 제 1조
의회는 국교를 정하거나 종교 행위를 금지하는 법을 제정하여서는 아니 된다. 또 의회는 언론 · 출판의 자유 또는 국민들이 평화적으로 집회를 할 수 있는 권리와 고충 처리를 위해 정부에 청원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법을 제정하여서는 아니 된다.
와 같은 선언들이 등장한다.
그렇다면 언론의 자유를 최초로 논한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영국의 시인이자 청교도 사상가인 존 밀턴이다. 1643년 영국 의회는 출판 허가법을 통과시켰다. 출판허가법이란 영국 의회에서 임명한 검열관에 의해 사전 승인을 받고 검열되지 않는 모든 출판물들은 인쇄, 출판, 유포, 판매할 수 없으며 이를 어길 시에는 징계를 받는 내용에 관한 법령이다.
이 법령이 발표되자 존 밀턴은 이에 반발하여 의회를 상대로 <아레오파지티카>라는 연설문을 발표한다. 존 밀턴은 검열제의 불필요성과 해악에 대하여 조목조목 따져서 의회가 출판허가법을 철회하기를 주장한다. 출판 허가제를 발표할 당시 의회의 입장은 다음과 같은데, 종교와 정부의 명예를 훼손하는 비방적이고, 선동적인 출판물들이 유포되어 출판계에 커다란 악폐를 초래하고 있으며 이러한 책들을 통해 세상에 악덕에 관한 지식들이 퍼져나가므로 이를 막아야 하기 때문에 법령을 발포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밀턴의 생각은 달랐다. 선의 지식과 악의 지식은 뒤얽혀있어 구별할 수 없을 만큼 비슷하다. 그러므로 악에 대한 지식이 없다면, 선에 대한 지식도 발견할 수가 없기 때문에 다양한 지식들을 골고루 섭렵해야하며 설령 나쁜 책이라 할지라도 사려 깊고 분별 있는 독자가 읽는다면, 그것은 악의 존재를 발견하기에 오히려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밀턴은 만일 악덕이 퍼져나가는 것을 막으려면 서적만으로는 불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책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풍속, 음악과 춤, 말과 행동들을 낱낱이 검열하여 조금이라도 악과 관계되어 있는 것들을 검열하고 처벌해야만 악덕이 퍼져나가는 것을 막을 수 있는데 이는 터무니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신이 우리에게 이성을 준 것은 우리에게 '선택의 자유'를 준 것이다. 우리가 올바른 이성을 가지고 책임감 있는 선택을 하는 것이 오히려 악덕이 퍼져나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출판물을 세상에 내보낼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는 검열관은 높은 학식과 자질이 요구되며 법령이 제대로 시행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저작물들을 읽고 판단해야하는데 그와 같은 방대한 업무는 상당한 교양을 갖춘 적지 않은 수의 검열관이 엄청난 시간을 할애해야만 수행할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이런 일들은 검열관에게 아주 지루하고 불쾌한 일이며 혹여나 지친 나머지 이 일에 물러나기를 원한다면 "무식하고 오만하고 무책임한 사람" 또는 "돈이나 밝히는 천박한 사람들"로 대체될 것이다. 한 국가의 모든 출판물들이 이러한 사람들 손에 맡겨지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다음으로, 검열은 학자들에게 큰 좌절과 실망감을 줄 수 있다고 밝혔다. 각고의 노력을 통해 저술한 저작물들이 검열관의 순간적인 판단에 따라 빛을 못 보게 되면 인류에게 진리의 빛을 선사할 저작물이 빛을 내뿜기도 전에 사라질 수도 있다. 만약 검열이 끝난 후에 새로이 덧붙일 글이 떠오르는 경우에는 어떨까? 책 한 권을 쓸 때에 그런 일은 수어 차례 발생하는데 그 때마다 번번이 검열가에게 원고를 새로 보여주어야 하는 번거로운 일이 발생한다. 고인이 된 저술가에게도 나쁜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만일 그의 책에서 "고양된 열정 가운데 표현된 위험스러운 문장"이 발견되었다고 하자. 그런데 그것이 "검열관의 진부하고 낡아빠진 취향"에 맞지 않아 삭제된다면 위대한 인물의 예리한 감각은 후대에 영원히 잊혀버리고 말 것이다.
마지막으로 검열제가 미치는 가장 큰 해악은 잉글랜드 국민들을 분별력이 형편없는 상태에 놓인, 지각없고 사악하고 근본 없는 국민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학문의 몰락과 토론 능력의 몰락으로 인해 잉글랜드의 역사는 후퇴할 것이고 다음 세대 국민들을 피폐하게 만들 것이라고 보았다.
밀턴의 날카로운 연설문은 훗날 검열제를 반대하는 자들의 근거로서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결국 1695년에 결실을 맺게 된다. 사실 아레오파지티카는 현시대의 입장으로 읽으면 다소 한계가 있다. 왜냐하면 밀턴이 주장한 "양심에 따라, 자유롭게 알고 말하고 주장할 수 있는 자유"란, 자신이 옳다고 믿는 종교 교리를 선택할 수 있는 양심의 자유, 자신의 신앙에 관해 자유롭게 주장할 수 있는 언론의 자유, 그리고 그것을 인쇄 매체를 통해 발표할 수 있는 출판의 자유를 의미하는데 이는 지금 우리 시대에서 말하는 언론의 자유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하지만 당시 17세기 잉글랜드는 기독교 신앙이 패러다임으로 깔려 있는 국가이고 대부분의 사회 현상들을 기독교를 통해서 설명하고 있음을 생각한다면 이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밀턴의 연설문 기저에 깔려 있는 진리와 이성에 대한 주의 깊은 생각들을 읽을 수 있다면 더욱 이 글은 언론의 자유에 관한 가치 있는 글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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