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꿈
울컥한 감정에 떠밀려 눈을 떴다.
태어나서 이런 감정을 느낀 꿈은 처음이었다.
나는 어렸을 때 할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한 손자였다. 아마도 내가 할머니께서 품은 첫 손자이기에 유독 많은 애정을 주신 것 같다. 할머니 댁과 집을 오가며 어린 시절을 보냈고, 그 때의 기억들도 아른아른하게 난다. 할아버지와 시냇가에서 목욕하며 느꼈던 숨이 멎을만한 찬물도 떠오르고, 이따금 집배원이셨던 할아버지의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던 기억도 난다.
할머니께서 만들어주신 아삭한 무생채, 큰 솥에 팔팔 끓여낸 육개장, 생선 맛이 짙게 밴 김치와 김이 모락모락 나는 김치만두. 특히, 나는 할머니의 밴댕이 김치를 참 좋아했는데 그래서인지 할머니 김치가 아니고서는 다른 김치를 입에도 대지 않았다. 할머니께서는 손맛이 좋아 주변 사람들이 할머니의 음식을 많이 찾곤 했는데 심지어 근처에 놀러 왔던 사람들이 할머니의 장맛을 보고 돈을 주고 사간 적도 있었다.
가끔씩 동네 할머니들께서 모여 윷놀이를 하시곤 했는데 그 때마다 내게 한 번씩 던질 기회를 주셨고 윷을 던지며 쏠쏠한 재미를 느끼기도 하고 윷놀이를 흥미진진하게 바라보기도 했다. 동생과 집 앞 마당에서 새 한 마리를 잡아보겠다고 어설픈 덫을 놓곤 했는데 항상 실패했던 기억도 난다. 그 당시의 내 무르팍에는 언제나 크나큰 반창고가 덕지덕지 붙어져 있었다.
지금 나의 할머니는 요양원에 계신다. 할머니와 함께 시골 마을을 거닐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걷지 못하신다. 게다가 귀도 많이 어두우셔서 보청기를 끼지 않고서는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기도 힘들다. 그런 내게 어제 꿈에 할머니가 나타나신 것이다. 나는 할머니와 파란 잔디가 깔린 쾌적하고 조용한 요양원 정원을 거닐고 있었다. 지금의 할머니와 다르게 꿈에서의 할머니는 정정하게 잘 걸어 다니셨다. 그녀의 손을 꼭 쥔 채 이 곳, 저 곳을 오래 걸어 다녔다. 할머니와 나눈 자세한 얘기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일상적인 대화를 큰 무리 없이 나눌 수 있었다.
어느 순간 꿈임을 직감했고 나는 할머니를 꼬옥 안아드렸다. 할머니께서도 나를 안아주시는 순간 눈물이 왈칵 났다. 동시에 깨 버렸다. 한동안 멍한 채로 침대 위에 앉아 있었고 아침을 먹으며 다시금 상기시켜보았다. 꿈의 여운이 가시지 않아서인지 울컥 하는 감정과 함께 그리운 할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어째서 이런 꿈을 꿨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할머니와 작별을 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는 것은 아닐까? 내일은 할머니를 뵙고 다시 한 번 안아드리고 싶다. 할머니 생각에 눈물이 아른 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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