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세상 내가 하는 인문학
블로그를 기웃거리며 다양한 사람들이 쓴 포스트를 살펴보다가 한 사람이 철학에 대하여 쓴 흥미로운 글들을 발견하고 자연스럽게 그 블로그를 탐독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철학책 추천 도서 목록을 읽게 되었고
‘염치가 없지만... 제 책 《내가 사는 세상 내가 하는 인문학》을 추천합니다. 하하...
제가 생각하기에는 나름 꽤 재미있고, 간결하고, 명확하고, 쉽게 썼다고 생각합니다..^^;;‘
글쓴이의 수줍은 자신감에 결국 무엇에 홀린 듯이 책을 빌리게 되었다.
도서관에서 ‘서문만 읽어봐야지.’라고 몇 페이지를 훅훅 넘기는데
‘이 책은 참 쉽게 잘 썼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달려갔다.
<13쪽, 저자의 서문 中>
앎에는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쌓는 길이고 하나는 버리는 길이죠.
우리는 보통 전자를 '지식'이라 부르고 후자를 '지혜'라고 부릅니다.
인문학이란, 이 두 가지 길 중 지식보다는 지혜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편견을 버리고, 독단을 버리고, 당연함을 버리고, 결국에는 모든 테두리를 버려서 사고가 자유로워지는 것이 인문학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79쪽, 인문학이란?>
인문학이란 결국, 플라톤의 이데아가 어쩌고저쩌고, 니체의 신은 죽었다가 어쩌고저쩌고를 아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부수적인 지식일 뿐이죠. 구글신에게 검색하면 다 나오는 겁니다. 스스로 내 삶의 기준이나 정답을 찾아 나만의 고유한 삶을 사는 것이야말로 인문학을 ‘하는’ 것이죠. 소크라테스가 꼬치꼬치 따지며 스스로 기준을 세웠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삶의 기준을 스스로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명쾌하다. 나와 같은 입문자들도 이해하기 쉽게 맛깔나게 글을 썼다.
언제나 인문학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걸 왜 알아야 할까? 라는 것들을 고민하고 있었는데
‘아! 이렇게 설명하면 되는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402쪽) 삶의 주인
“내 삶의 주인은 나다”
주인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기존의 가치를 거부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가치란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것에 가치를 부여할 때만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살아가며 접하는 모든 것, 모든 행위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 그리고 바로 그때야 비로소 사유하고 느끼며 살아가는 ‘나’의 행위와 연관된 모든 것이 나의 선택이 되는 것이고, 내가 나의 기준으로 선택한 것이므로 긍정할 수 있는 삶이 된다. 따라서 니체에게 있어서 삶이란 그 어떤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그 삶의 주인이 ‘누구’인가, 주인의 시각을 가진 사람인가. 노예의 시각을 가진 사람인가에 달려 있습니다. 그가 자신의 기준으로 자신의 삶을 선택한 것인지, 그럼으로써 자신이 쌓아온 운명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인지에 달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