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승전'과 '패전', '전투'와 '대전', '지휘관'과 '병사', '영토', '영웅'과 '무용담', '포로'와 '항복'
'삶'과 '죽음', '살인', '용기'와 '잔인함', '허망함', '공포스러움'
내가 전쟁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자연스레 떠올렸던 단어들이다.
위의 나열된 단어들을 읽고 난 후에 '男'와 '女' 중 무엇이 먼저 떠오를까?
반 아이들에게 보여주어도 대부분이 '男'라는 단어를 먼저 떠올렸다.
이렇게 전쟁은 남자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왔고
전쟁의 주인공은 남성이라고 생각해온 내게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게다가 대부분의 기록들이 남자의 언어, 남자의 생각으로 기록되었지 않은가?
그러나 내가 아는 사실은 완전한 오류였다.
인류 역사에서 여자가 군대에 처음 등장한 것은 기원전 4세기이다.
그 이후로 현재까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여자들이 전쟁에 참가했왔던 것이다.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 여자들에 대한 기록이 이 책에 씌여 있다.
단순한 사실들을 나열한 전쟁의 기록이 아니라,
전쟁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진솔한 감정을 보여주는 글이 바로 이 책이었다.
전쟁을 겪어보지 않았기에 그 상황을 맞닥뜨리지 않은 나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전장의 순간들.
그 상황들이 바로 내 눈앞에서 생생히 펼쳐졌다.
"우린 전사자들을 숲속 나무 밑에 자주 묻었어…….
참나무 아래에도 묻고 자작나무 아래에도 묻고…….
나는 지금도 숲은 안 가.
특히 늙은 참나무나 자작나무들이 자라는 곳은……
그 곳에 앉아 있을 수가 없어……"
트럭을 타고 가다보면 사람들이 죽어 누워 있는 게 보였어.
짧게 깎은 머리가 파르스름한 게
꼭 햇빛에 돋아난 감자싹 같았지.
그렇게 감자처럼 사방에 흩어져 있었어…….
도망치다 넘어진 모습 그대로
갈아엎은 들판에 죽어 누워 있었어…….
꼭 감자처럼…….
전쟁이 끝나면 하고 싶은 일 세 가지가 있었어.
첫째, 배로 기지 않고 두 다리로 서서 전차 타기.
둘째, 흰 빵을 사서 통째로 먹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빳빳하게 풀을 먹인 하얀 침대보 위에서 실컷 자기.
하얀 침대보가 깔린 침대 위에서…….
우리는 너무 이른 나이에 전쟁터로 갔어.
아직 어린애나 다름없었는데.
얼마나 어렸으면 전쟁중에 키가 다 자랐을까.
집에 돌아왔을 때 엄마가 내 키를 재보았는데…….
그동안 10센티미터나 키가 컸더라니까…….
때론 전쟁터에서 맞는 아침이 얼마나 아름다운 지 알아?
전투가 있는 날 아침이면…….
주위를 보며 생각했지.
'어쩌면 아침을 맞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일지 몰라.
아, 세상은 이렇게도 아름다운데…….
공기도….. 햇살도….'
전쟁 속에서 무뎌져 갈 것만 같은 감정들...
그 단단해져가는 감정 속에서 또 다른 감정들이 자라나고 있었다...
사랑과 행복, 아픔과 슬픔 말이다...
전쟁터라고 왜 못느끼겠는가?
수많은 여성들의 울림이 가슴 속을 채워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