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학예회 준비로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는 와중에 또 한 녀석이 사고를 쳤다.
복도에 걸려있는 가렌더를 만지고 있는 한 여자아이와 다투게 된 것이다.
서로 놀림을 주고받다가, 자연스레 한 명이 도망가고, 또 그 뒤를 뒤쫓다가 잡히고, 그러다 남자아이가
여자아이를 잡고 업어치기를 한 것이다.
여자아이는 울고불고 난리가 나고, 반아이들의 이목이 집중된 상태였다.
아직 남자아이도 흥분이 된 상태기에 둘을 떨어트려 놓았다.
다음 여자아이를 진정시키고 나서 둘 다 연구실로 보내었다.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함이었다.
얽히고 설힌 마음을 추스리고 한 아이씩 자신의 마음 속 이야기를 하게 하였다.
단, 상대방을 비난하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도록 하였다.
먼저 여자아이가 입을 열었고 여자아이의 입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단순히 그 녀석이 장난을 많이 쳐서 싫다고, 많이 혼냈으면 좋겠다고 말 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삶에 대한 푸념이었다.
내가 왜 이 고생을 하며 학교를 다녀야 하는지에 대한 푸념.
가족들과의 삶 속에서 생긴 울화, 공부에 대한 부담감과 압박으로 인한 울화, 학교에서 친구들과의 생활 속에서 쌓인 울화까지 모든 게 뒤섞여 터져 나온 푸념.
너무나 절실하게 말하기에 듣고 있던 남자아이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나도 슬픔 감정이 턱 밑까지 차올랐다.
이야기가 끝이 나자 남자아이에게 어떤 생각이 드는지 물어보았다.
울먹이는 목소리로 미안하다고 말한다.. 불쌍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앞으로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겠다고 말한다.
여자아이도 자신의 심정을 털어놓고 나니 속이 후련하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한 걸음씩 성장을 한다.
물론 까마득하게 잊고 몇 분 뒤엔 다시 아무렇지 않은듯이 왁자지껄 떠들고 있겠지.
그래도 무엇인가가 아이들의 내면을 조금씩 두드릴것이고, 두드리다보면 언젠간 열리게 될 것이다.
아이들의 마음 속 한 구석을 비추어주는 갸냘픈 손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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