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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밤, 비/The Great Book

이반 일리치의 죽음

by 블라이스 2018. 4. 28.

이반 일리치의 죽음




 이반 일리치는 능력 있고 선량하며 사교적인 사람이다. 법률학교를 졸업하고 판사 자리에 오를 때까지 충실하게 업무를 수행하여 경력을 쌓았고, 한편으로 유쾌하고 품위 있는 삶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매력적이고 영리한 아가씨와 결혼을 하여 행복한 신혼 생활을 보내고 귀여운 자식들은 무럭무럭 자랐다. 멋진 집을 가지고 많은 연봉에 높은 직책까지 얻었다. 즉, 모두의 존경을 받으며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삶을 산 그런 사람이다.  


 그러던 어느 날 집을 꾸미던 도배공에게 시범을 보여주려고 직접 사다리에 올라갔다가 발을 헛디뎌 떨어져 옆구리를 부딪치는 일이 생겼다. 부딪친 곳은 멍이 들었고 아프긴 했지만 이내 괜찮아졌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이 상처는 점차 그를 죽음으로 몰아간다. 통증은 점점 심해지고 의사들마다 진단이 달라 올바른 치료를 할 수 없게 되어 상태는 악화되었다. 고통은 매 순간 그를 찾아왔고 일상생활을 하기 힘들 정도로 그를 몰아붙였다.


 이반 일리치는 조금씩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 죽음이란 것에 관하여 그리고 더 나아가 자신의 삶 전체를 되돌아보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죽음에 대하여 공포와 두려움을 가진다.


'곧 사라지고 말겠지! 대체 어디로 말인가?', 

'내가 없어지면 그 자리엔 뭐가 남는 거지? 아무것도 없는 건가?

 내가 없어진다면, 그렇다면 난 어디에 있는 걸까? 정말 내가 죽는 걸까? 아니, 난 죽고 싶지 않아!'


 자신이 죽어가고 있음을 느끼며 절망하고, 좀처럼 사실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죽음에 대하여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할 수가 없다. 나만의 생각과 감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나란 존재를 버젓이 느낄 수 있는데 내가 어떻게 죽을 수 있단 말인가? 


 시간이 흐르자 이반 일리치는 또 다른 고통을 겪게 된다. 

이반 일리치에게는 죽음이 점점 옥죄어와 너무나 무섭고 고통스러운데 반해 주변 사람들은 죽음이란 나랑은 관계없는 일이라고 여기며 어느 누구도 그가 바라는 만큼 진심으로 이반 일리치를 가여워하지 않는다. 단지 그가 바라는 것은 아이를 안고 달래듯 다정하게 다독여주고 입맞춰주고 자신을 위해 울어주는 일 뿐인데 말이다. 즉, 자신을 진심으로 가여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이반 일리치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다.


 그러다 이반 일리치는 문득 '혹시 내가 잘못 살아온 건 아닐까?' 이라는 생각을 가진다. 하지만 어긋남 없이 살아온 자신의 삶들을 떠올리며 그럴 리가 없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 생각은 점점 확고해진다.


 '이반 일리치는 주변 사람들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보았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삶과 죽음을 가려버리는 무섭고도 거대한 기만이었음을 똑똑히 보았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그의 육체적 고통은 열 배쯤 커졌다.'  


 마침내 그는 받아들인다. 지금껏 살아온 잘못된 나를. 그 때부터 사흘간 처절한 고통 속에서 바동거린다. 그가 눈을 감기 한 시간 전에 김나지움에 다니는 아들이 아버지 방에 가만히 들어와 침대로 다가왔다. 아들은 손을 잡아 자기 입술에 대고는 울음을 터뜨렸다. 그 순간 이반 일리치는 한 줄기 빛을 보았다. 증오했던 가족들이 안쓰럽게 보였고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게 되었다. 죽음이란 고통 속에서 가족들은 상처받게 하고 싶지 않았고, 자신도 벗어나고 싶었다. 나의 잘못된 삶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자 죽음은 또 다른 빛으로 느껴졌다. 괴로움이 사라지는 것이 느껴졌고 더 이상 죽음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죽음에 대한 공포 또한 느낄 수가 없었다.


 '끝난 건 죽음이야. 이제 죽음은 존재하지 않아.'


이렇게 이반 일리치는 몸을 축 늘어뜨린다. 

 


 나 또한 언젠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은 시작되었고 점차 죽음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 예전에는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어쩌면 너무도 어둡고 무거운 주제였기 때문에 일부러 피했을 지도 모른다. 이 소설을 읽으며 죽음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해 봤다. 어떻게 하면 잘 죽을 수 있을까? 왜 사람들이 '웰다잉'에 관심을 가지는지 알게 되었다. 이전에 나는 수십 년의 세월이 남았기에 죽음이란 것이 절대 다가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주변에서 죽은 사람들의 소식을 들어도 나와는 관계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반 일리치의 주변 사람들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제는 죽음이 도처에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어쩌면 나는 내일 죽을지도 모른다. 어떠한 일이 생길 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죽음에 대한 시선을 조금만 바꾸어 보자. 그러면 삶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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